염기원

작가의 말

『오빠 새끼 잡으러 간다』 작가의 말

『오빠 새끼 잡으러 간다』(2023) 책 끝에 실린 작가의 말입니다. 줄거리와 결말이 언급될 수 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오로지 장편 집필에만 전념했다. 그 고된 시간을 나는 ‘창작의 행군’이라 부른다. 행군 기간에 쓴 소설 중 가장 최근 것을 세상에 먼저 내보낸다.

창작의 행군을 시작하며 큰 변화를 시도했다. 한 번 집필을 시작하면 초고를 마칠 때까지 아무런 예외 없이, 매일 글을 쓰기로 한 것이다. 집필 진도를 엑셀로 정리했다. 목표량을 채우면 대개 새벽이었고, 날이 밝기 시작한 뒤에야 잠든 적도 많았다.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 달리기라는 루틴에 피아노 연주를 추가했다.

이런 때가 또 올까 싶었다. 작품 하나를 끝내고 퇴고하다 보면 어김없이 다음 작품 소재가 떠올랐다. 호수공원을 달리다가,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중에, 샤워하다 말고, 섬광 같은 것이 머릿속에 번뜩였다. 그걸 빨리 쓰고 싶다는 욕구가 퇴고의 고통을 압도했다. 퇴고를 마치면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강원도의 동굴, 등대가 있는 어촌마을, 짐바브웨의 마나 풀스 국립공원, 심지어 우주 공간까지, 다양한 배경에서 펼쳐지는 장편소설 여러 편을 연달아 썼다. 쉬지 않고. 십 대 청소년부터, 중년의 우주인, 수상한 연극배우, 복싱하는 여고생, 등장인물도 다양했다. 아프리카 들개나 외계인, 귀신마저 등장했다.

내 이야기에 깊게 빠져들었다. 독한 몰입 덕분에 창작과 루틴이라는 똑같은 일만 매일 되풀이하는, 극도로 단순하고 따분한 하루하루를 이겨낼 수 있었다. ‘이 작품까지만 쓰고 휴식 기간을 갖자’라는 다짐을 번복하기 수차례, 차곡차곡 글이 쌓여갔다.

주말이면 한자리에 모여 식사하고 함께 영화를 본 뒤 감상을 나누는 게 우리 가족의 오랜 문화가 되었다. 어느 일요일 저녁, 함께 영화를 보던 동생 얼굴이 내 눈에 새삼스러웠다. 순간, “오빠 새끼 잡으러 간다”라는 문장이 입 밖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몇 분 만에 세운 이야기 뼈대를 네 줄짜리 메모로 휴대폰에 저장했다.

그 무렵, 글쓰기에 지나치게 골몰한 나를 걱정하던 가족들은 적어도 몇 달, 아니, 1년 정도는 휴식을 취하라고 했다. 피곤도 잊은 채 쉼 없이 글만 쓴 시간이 꽤 길었던 게 사실이고, 쌓아둔 글들을 어떻게 처분할지도 고민해야 했으니. 가족들의 말을 들었다.

대학 시절, 사업을 그만두고 글을 쓰겠다며 홀연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그때 가장 깊은 인상을 주었던 태백으로 향했다. 밤이 되면 황지 근처에 있는 페투페에 가서 생맥주를 마셨다. 옆 테이블에 있던 여자가 채하나였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지난봄, 문예지 행사 준비 때문에 안양역에서 하루 묵게 되었다. 근처 시장통을 구경하다가 삼덕 도서관에 들렀다. 그곳에서 한 시간 남짓 머무르며 이야기를 정리했다. 뼈대에 태백이라는 살을 입히는 작업이었는데, 아직도 눈앞에 생생한 장소를 배경으로 담으며 희열을 느꼈다.

회룡포부터 시작해 태백 곳곳을 돌아다니며 보고 들었던 장소와 말글을 그대로 담았다. 특별한 취재는 필요하지 않았다.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하며 수많은 사기꾼을 취재했고, 강의 시장과 스타트업 업계에도 오랫동안 몸을 담았으니까. 결정적으로, 내게는 서로 끔찍이 아끼는 여동생이 있다.

이 글은 내 소설 중 알레고리 요소가 거의 없는 유일한 작품이다. 남매가 서로 화해하는 이야기 골자를 시간순으로 따라가며 읽으면 그만이다. 물론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 거 같냐’라는 남매의 대화처럼, 중간중간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긴 하다. 어쩌면 하나는 그 질문 하나에 붙들려, 내내 그 답을 찾으며 살았는지 모른다. 강천 역시 마찬가지였다.

99년생 채하나는 건강하고 평범하며 젊은 여성이다. 투포환 선수를 하다가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오빠가 하는 일이라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모습이 초반부터 나오는데, 걱정되기 때문이다. 오빠를 죽도록 싫어하면서, 또 그만큼 사랑하니까. 가족이나 연인, 특히 형제간에는 서로에 대한 사랑과 증오가 동시에 작동하기도 한다. 같은 발원지에서 상반된 것들이 용출되는, 역설과 모순이다.

작중 인물이 갈리는 지점은 시대 질서에 순응하느냐, 아니면 거부하느냐에 있다. 하나와 강천 남매는 세상의 관성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궤도에서 이탈해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택했다.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모를 리 없기에 ‘용감한 남매’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나는 운동을 스스로 포기했다고 얘기하지만, 경쟁만이 유일하고 절대적인 질서인 승자독식 시스템을 거부한 것이기도 하다. 남들의 욕망을 내 기준으로 삼지 않는 인물이라는 건 그녀의 음식 취향에서도 나타난다. 그녀가 선택한 직업 역시 그렇다. 정직하게 일해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공장 일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곳에서 일하는 것에 불만이 없다.

하나는 엄마의 자살이 사랑에 힘이 없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강천의 생각은 달랐다. 오히려 사랑에 힘이 있다는 증거라면서, 자신을 잡으러 온 동생을 향해 그는 반박한다. 두 사람의 말 중 무엇이 옳은지 가려낼 수는 없는 이유는 그것이 검증 가능한 명제가 아니라 선택의 차원이기 때문이다.

강천은 천민자본주의에 순응하는 걸 거부하고 시대와 불화하는 뾰족한 인물이다. 작중에 나오는 ‘책기꾼’ 정도는 사기꾼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는 단호하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사기 행위’를 조장하는 시스템을 방치하고 심지어 조장하는, 플랫폼 사업자들 역시 사기를 조장하거나 사기를 치고 있다고 본다. 이용권을 지급해 호의적인 리뷰가 쌓인 식당이 맛집이 되고, 각종 체험단을 운영해 별점을 높이면 인기 상품이 되기 때문이다.

포탈에서 맛집이라고 해서 찾아간 식당은 대개 형편없다. 가성비가 좋다는 리뷰를 보고 구매한 제품이 오프라인 상품보다 더 비싸고 조악한 경우가 많다. 강천은 그런 현실을 푸념하는 선에서 멈추지 않고 변화를 추구한다. 단번에 뒤집어엎을 수는 없더라도, 한 발짝씩 나아가면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가 서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정체가 불분명하다. 강남 한복판에 솟은 최첨단 빌딩 내부 역시 그녀 눈에는 허술하게 보인다. 그 안을 채운 건 알맹이가 없는 존재들 뿐이다. 자아를 한껏 부풀려야 인정받는 세상이 그녀에게는 마뜩잖다.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타자화하고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른 하나와 미주가 친구로 지내며 연대하는 건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였고, 서로에게 솔직하기에 가능했다.

작중에 등장하는 ‘책기꾼’은 창작한 것이지만, 세상에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 그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젊은 사람들의 피, 땀, 눈물을 짜내어 자신의 배를 채우는 사기꾼의 역사는 유구하다. 현대의 직업 중 많은 수가 책기꾼이 하는 일과 비슷하다. 합법의 테두리 안에, 혹은 경계에 있을 뿐이다. 하연의 직업도 그러한데, 그녀처럼 자기 일의 본질을 알면서도 순응하며 살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황지 꼴통스’ 멤버들은 자주 술을 마신다. 하나가 만취하는 장면들이 있는데, 그때마다 그녀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을 놓친다. 망각이란 건 동전의 양면과 같다. 수치심과 죄책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에게 진통제처럼 절실한 것이지만 쉽지 않다. 자신에게 불리한 것이라면 댓글 삭제 버튼 누르듯 지워버리는 사람에게 망각은 소화제처럼 쉽고 빠르다.

독자의 영역을 더는 침범하고 싶지 않다. 몇 가지 얘기로 마무리하겠다.

이 책의 첫 문장을 쓴 날부터 마지막 문장을 쓰기까지 한 달 하고 이틀이 걸렸다. 데스크톱이 고장 나서 한 주를 날린 것까지 포함한 시간이니 꽤 빨리 쓴 편이다. 일 평균 35매를 썼다. 물론 글을 다듬는 작업에는 몇 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소설의 첫 문장을 책 제목으로 시작하는 건 애초의 의도였지만, 마지막 문장까지 같아지며 수미쌍관이 된 건 계획에 없던 일이다. 집필 마지막 날 새벽, 무엇에 이끌린 듯 원래 쓰려던 내용을 바꾸었다. 첫 문장과 같은 문장으로 마무리가 된 것이 마음에 들었다.

늘 나를 응원해주는 동문 선배가 선릉역 참치집에서 나를 두고 ‘21세기 허생’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업을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무렵,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며 해준 얘기였는데, 그 말이 꽤 인상적이어서 잠재의식 속에 남아있던 건지도 모른다.

내가 태백을 좋아하는 이유를 이 책에 모두 담았다. 최근까지도 이사를 놓고 고민을 했을 정도다. 조만간 다시 들러 소설 속 장소들을 방문하고, 황지 꼴통스 멤버들과 어울릴 생각이다. 페투페에서 만났던 그 아가씨는 지금쯤 내 말대로 소설을 쓰고 있을까?

※ 작중 등장하는 인물과 단체는 실제 존재하지 않으며, 비슷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우연임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