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기원

장편과 단편 · 단편소설

좌완 파이어볼러 신성우

좌완 파이어볼러 신성우

Southpaw Fireballer Shin Seong-woo

헤어진 지 10년, 고교 유망주 투수에서 배달 라이더가 된 남자와 베이시스트인 전 여자친구가 동창회 여행 뒤 작은 섬에 함께 남겨진다. 둘 다 기억하지 못하는 열두 시간과 함께.

줄거리

고등학교 2학년 때 신성우는 시속 148km 직구를 던져 '좌완 파이어볼러'로 뉴스에 나왔다. 팔꿈치 부상과 입스로 프로 문턱에서 끝났다. 인디밴드 보컬이 되어 베이시스트 선희와 사랑에 빠졌지만, 중국집 배달원이던 아버지가 음주운전 차에 치여 죽고 엄마가 백 일 만에 재혼하자 둘 다 떠났다. 서른 넘은 지금 그는 배달 라이더다. 한 번도 목표를 놓친 적 없는 유일한 일이다.

동창회에서 즉흥적으로 여섯 명이 인천 앞바다의 작은 섬으로 배를 탄다. 어느 밤 성우와 선희는 두 친구의 관계를 무너뜨릴 비밀을 목격하고, 다음 날 다른 이들이 서둘러 떠나자 두 사람은 하루를 더 섬에 남는다. 싸구려 맥주, 문 닫은 카페, 긴 산책.

돌아오는 배에서 소주와 컵라면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기억나지 않는 그 밤과 성우의 이름이 따온 록 가수의 노래로 가득한 아버지의 MP3, 그리고 그가 왜 떠났는지를 맴돈다.

영상화 포인트

  • 배와 섬에서 펼쳐지는 2인극: 제한된 공간, 친밀함, 적은 제작비.
  • 동창회, 섹스, 숙취를 웃기고 솔직하게 다루면서 그 아래 진짜 슬픔이 있다.

도입부

배가 바다를 가르며 남긴 기다란 곡선이 뱃고물 뒤부터 수평선까지 쭉 뻗어 있다. 사실 바다를 갈랐다는 건 그냥 수사적 표현이다. 최고 속도가 고작 15노트에 불과한 이 524톤짜리 페리호가 아니라 수백 미터에 달하는 컨테이너선도, 미국의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호도, 실제로 바다를 가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화장실에서 나온 선희가 흰색 철제 난간을 잡고 계단에서 내려와 내 옆에 섰다. 우리는 담배를 피우며 사흘 동안 머물렀던 섬이 작아지는 걸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자월도에 들르기 위해 배가 방향을 트는 순간, 제법 큰 파도에 배가 크게 출렁였다. 어머. 짧은 비명과 함께 선희가 중심을 잃었고 나는 반사적으로 그녀의 팔뚝을 잡았다.

뿌우. 뱃고동 소리가 울렸다. 그녀를 붙들었던 손을 내려놓자 요란하던 엔진 소리가 멈추었다. 이내 정적이 이어졌고, 낚시꾼 둘만 배에 올랐다. 몇 초 만에 다시 시동이 걸렸다. 뱃고물 위로 시꺼먼 연기가 풀풀 올라왔다. 나는 디젤엔진 특유의 냄새가 좋은데, 선희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인천항까지 가려면 앞으로 한 시간 반. 가뜩이나 어색한 상태였는데 지금은 더 심하다. 그녀와 알고 지낸 지도 벌써 10년이 넘는다. 그중에는 연인으로 지낸 시간도 있다. 지금 우리 사이를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고등학교 동창, 같이 활동했던 팀원, 서로의 엑스, 셋 중 하나 혹은 모두일 텐데. 평생 갈 소울메이트라고 여긴 적도 있었다.

“커피라도 마실까?”

내가 먼저 침묵을 깼다.

“여기 커피 별로지 않았어? 차라리 맥주나 마시자.”

“그럴까?”